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문단 편집) == 음반/영상물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미친듯이 많이 낸 베를린 필 만큼은 아니지만, 이 쪽도 물량 면에서 전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들 쏟아내고 있다. 특히 상임 제도가 없는 악단 특성상 지휘자들의 면면이 대단히 화려하다. 물량 면으로 이 악단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한 인물들을 가늠할 수 있는데, 비록 중기에 트러블이 생긴 적이 있지만 카라얀도 베를린 필에 버금가는 많은 음반과 영상물을 제작했다. 흥미롭게도 그 시기가 베를린 필과 오히려 갈등을 겪기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으로 맞물려 있는데, 마지막 공연과 녹음도 이 악단과 같이 했다. 카라얀 이외에는 동향인 선배였던 [[칼 뵘]]과 미국 출신 [[레너드 번스타인]], [[이탈리아]] 출신 [[클라우디오 아바도]], 역시 미국인이었던 로린 마젤 등이 빈 필과 음반을 많이 남긴 지휘자로 손꼽힌다. 카라얀과 뵘, 아바도, 마젤의 경우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겸무했기 때문에, 악단 구조상 빈 필과도 많이 어울리게 되어 녹음 기회도 많아졌다. [[올드비]] 지휘자들도 숫자는 적지만 그래도 여러 종류의 명반들을 내놓은 바 있다. 바인가르트너나 [[푸르트벵글러]], [[브루노 발터]], [[한스 크나퍼츠부슈]]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 참고로 보수적인 단체답게 첫 음반도 1928년에야 나왔다. 당시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이었던 프란츠 샬크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6번과 8번, 레오노레 서곡 3번 세 곡이었는데, 그나마 전기 녹음 기술이 도입되고 만들어진 탓에 베를린 필의 초기 녹음보다는 음질히 한결 나은 편이다.[* 빈 국립오페라 관현악단의 첫 녹음은 아직 구식 어쿠스틱 녹음을 쓰던 1924년에 이루어졌다. 이것까지 소급해도 베를린 필보다는 늦게 녹음에 뛰어든 셈이다.]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까지 약15년간 데카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데카와 전속 계약은 악단에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평가하곤 한다. 데카는 DG, EMI에 비해 오페라에 비중을 크게 두었다. 반면 DG는 비용이 많이 드는 오페라 녹음을 가급적 자제하고 관현악곡 위주로 카탈로그를 구성해 나가는 전략을 취했다. 베를린 필과도 전속계약을 맺었고, 독일권의 우수한 지휘자들을 영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60년대 DG가 보유한 지휘자들로는 카라얀, 뵘, 쿠벨릭, 요훔 등이 있었다. 데카가 보유하고 있는 지휘자들의 네임밸류는 DG, EMI에 비해서는 후달린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빈 필은 최초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한스 슈미트-이셰르슈테트와 녹음했다[* 다만 유명세는 좀 떨어지기는 해도 슈미트-이세르슈테트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에는 전업 지휘자도 아니고, 본업이 증권 투자자이자 언론인인 길버트 카플란이 자신의 유일한 지휘 곡목인 말러의 교향곡 2번을 [[도이체 그라모폰]]에 취입해 [[충공깽]]을 선사했다.[* '"만장자가 돈으로 연주했다"라는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지만, 카플란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말러리안이자 유명한 말러 수집가이기도 하다. 20대때 말러 2번 교향곡을 들은 이후로 여자친구와 데이트로 말러 교향곡을 들으러 갈 정도로 말러에 대한 애착이 뛰어나며, [[도이체 그라모폰]]에 말러 2번 교향곡을 취입하기 전에는 말러 2번 교향곡을 이해하기 위해 2번 교향곡이 연주회가 있는 곳이라면 영국서부터 호주까지 갈 정도로 열정이 엄청났다. 줄리어드 대학생 시절부터 [[게오르그 솔티]]에게 개인 과외까지 받는 등 카플란이 말러를 연주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은 엄청났으며,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돈으로 구입한 전세계 악단을 지휘하는 물질주의자' 와는 거리가 먼 클래식에 열정이 있는 인물이다. 그냥 돈으로 악단을 매수했다면 어떻게 그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말러 2번 교향곡이 18만장이 팔린 배스트 샐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과거 말러의 악단이었던 빈필이 말러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개정안을 가장 먼저 녹음&연주해야 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고 한다. 카플란은 부활의 여러 스코어를 비교하여 문제점을 500여개나 바로잡아서 개정안 출판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말러 2번 교향곡을 어느 지휘자보다도 잘 이해한 아마추어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사실 1930년대 세계경제 대공황으로 어렵던 시절 미국의 한 부유한 실업가가 빈 필을 지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회고에 의하면 그 지휘자(?)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4박자로 지휘했으나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고 한다. 매년 신년음악회 역시 꼬박꼬박 CD/DVD/블루레이로 출반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